안녕하세요 쿠르베씨 !! 오르낭의 장례식 좀 볼께요..

2024. 1. 30. 19:31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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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베로 인해 미술은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들어온다.

 

1. 쿠르베의 자화상

 

Gustave Courbet, Self-portrait with a Black Dog (c. 1842-1844). Oil on canvas, 69 x 77 cm (27.1 x 30.3 in). Petit Palais, Paris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자화상), 1842년

 

 

자세한 내용〈파이프를 물고 있는 남자〉(자화상), 1848-49년.

 

1. 안녕하세요 쿠르베씨 !! 

 

자세한 내용〈돌 깨는 사람들〉, 1849년. 캔버스에 유채, 165 × 257 cm, 베를린 국립회화관

 

 

〈안녕하십니까, 쿠르베 씨〉, 1854년. 캔버스에 유채, 129 × 149 cm, 몽펠리에 파브르 박물관

 

"천사 그려라? 천사가 없는 데 어떻게 그리나..." 쿠르베는 혁명 그 자체였다. 미술에서의 사실주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1850년에 쿠르베는 유명한 대작 《오르낭의 매장(埋葬)》(A Burial At Ornans)을 발표하였는데, 당시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았다. 다음 1855년에는 특별한 개인전 화랑에서 《화가의 아틀리에》를 발표하였는데, 그는 회장 입구에 '리얼리즘'이라고 써놓았다. 예전부터 서양화의 묘사는 철저한 사실을 기본으로 한 것이었지만, 특히 사실주의라고 불리는 이후로는 그것이 더욱 철저한 성격을 갖게 되었다. 쿠르베는 천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지 않았으며, 현실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그릴 것을 주장하였다. 그것은 형상에도 색채에도 가장 정확한 관찰을 하여 현실의 재현을 철저하게 할 뿐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에서도 명백하였지만, 쿠르베 작품은 유례없는 박진력을 낳아 반대측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을 추하게 만든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쿠르베는 종래의 미술이 외면하던 사회의 가난한 일면이나 노동의 가혹한 실체를 진실로 당면한 사실로서, 박력 있는 묘사로 드러내었다. 또한, 시민계급 외에 민중의 입장이 강화되는 시대에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통해 사회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투쟁의 형식까지 취하여 진전시켰다.

 

문학에서는 발자크, 스탕달에서 비롯하여, 플로베르에서 확립되고, 다시 졸라의 자연주의를 낳았다. 자연이나 인생 등 문학의 대상을 객관적 태도로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는 작가의 자세라는 의미로서는 묘사주의라고도 번역된다. 보통 사실주의라고 번역되는 의미에서는 유형적인 표현보다 대상의 개성적 특징을 명확히 묘출(描出)하여, 그 미화(美化)나 주관에 의한 대상의 변모를 피하고,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사실을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자연주의는 그것을 다시 실증주의(實證主義)와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해부하고 분석하려고 한 것으로서, 근대 과학의 성과에서 의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사실주의를 광의로 해석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모든 예술의 근본적 요소라고 생각된다. 다만 무엇을 '사실'로 볼것이냐에 따라 사실주의도 얼마든지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 과학적인 '사실'과, 사회적 '현실'은 둘 다 영어로는 리얼(real)로 표기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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