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30. 19:52ㆍ명화
1. 나비Nabi 화가 : Paul Sérusier (French, 1864-1927)
1.1. 나비파 ... Nabi
나비파는 1888년 폴 세뤼지에(Paul Sérusier, 1864-1927)가 폴 고갱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고갱은 "작가는 현실과 구별되어 자신의 직관을 따라가야 하며 본인의 방식대로 실재를 표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할 때 세뤼지에는 동료 화가들과 공감대를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나비파가 형성되었다. 이들은 '인상파', '야수파'와 달리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였던 '나비'라는 단어를 스스로의 이름으로 선택했는데, 이는 히브리어로 '예언자', '비밀을 드러내는 자', '신에게 영감을 받는 자'를 뜻하는 '나비'(Nabis, nebiim)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심령주의에 매료된 나비파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신의 표현 방식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는 감성과 신비로움을 연관지어 표현하고자 했던 상징주의 회화와도 관련이 있다.
또한, 나비파는 이집트 벽화, 중세 스테인드글라스, 비잔틴제국의 모자이크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 평면적이고 단순한 표현방식에 이끌렸으며,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신앙과 교육의 목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나비파는 예술이란 삶에서 어디서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식적 기능으로 미술을 바라보았다. 벽이나 가구 위에 그리는 장식화와 이젤 위에 놓고 그리는 캔버스 회화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1867-1947),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 1868-1940) , 펠릭스 발로통은 포스터, 목판화, 삽화, 병풍과 부채 등을 활용한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뷔야르의 화면 구성방식과 색의 사용이 중세 시대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비파는 색채의 자유로운 사용과 틀에 벗어난 공간의 표현을 통해 회화의 본질을 연구했다. 특히, 색지를 오려 붙인 듯한 평면적 구성 방식은 이후 브라크와 피카소가 입체주의 회화를 발전시키는 데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비록 나비파로서 활동한 기간은 짧았지만 캔버스라는 전통 매체를 벗어나 인간의 삶에 밀접한 예술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였고,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부터 끊임없이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1.2. Paul Sérusier (French, 1864 -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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