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3. 21:10ㆍ명화
유리
Leo Lesser Ury(German, 1861-1931)Leo Lesser Ury(German, 1861-1931)는 뒤셀도르프 회화 학교와 관련된 독일계 유대인 인상파 화가이자 판화 제작자였습니다. Ury는 프로이센의 Birnbaum에서 빵집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878년 레서(Lesser)는 상인의 견습생으로 학교를 떠났고, 다음 해에는 뒤셀도르(Düsseldorf)로 가서 쿤스타카데미(Kunstakademie)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Ury는 브뤼셀, 파리, 슈투트가르트 및 기타 지역에서 시간을 보낸 후 1887년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그의 첫 번째 전시회는 1889년에 열렸으며 적대적인 환영을 받았지만, 그는 Akademie가 Ury에게 상을 수여하도록 유도한 영향력이 있는 Adolph von Menzel의 옹호를 받았다. 1893년에 그는 19세기 말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이 결성한 여러 분리파 중 하나인 뮌헨 분리파에 가입했다. 1901년에 그는 베를린으로 돌아와 1915년에 처음으로 베를린 분리파와 함께 전시회를 가졌으며 특히 1922년에 주요 전시회를 열었다. 이 무렵 Ury의 비판적 명성은 높아졌고 그의 그림과 파스텔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그의 주제는 풍경, 도시 풍경, 실내 장면으로, 어두운 실내에 있는 인물의 차분한 색조부터 밤에 가로등의 효과, 여름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눈부신 나뭇잎 빛에 이르기까지 인상주의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다.
Ury는 특히 야간 카페 장면과 비오는 거리를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는 원본을 유지하면서 판매하기 위해 이러한 작곡을 반복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고, 이렇게 빨리 만들어지고 열악한 사본은 그의 명성에 해를 끼쳤다.
항상 내성적이고 사람들을 불신하는 Ury는 말년에 점점 더 은둔하게 되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사망했으며 베를린-바이센제(Berlin-Weissensee)에서 쉬고 있다.
2. 작품소개
아래 유화작품들은 색감과 거친 붓터치가 현대인들까지도 매료시키는 멋짐을 가지고 있다.
빨간 카페트와 여주인장의 까만 드레스가 더더욱 빨간, 더더욱 까만 빌로드의 느낌을 전해주어 인상적인 작품이다.
음... 숲속에 와 있는 느낌...
그리고 아래 작품들도 음미해보시길 바란다.
음... 이 노신사는 너무 저돌적으로 대쉬를 하고 있으시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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